못 다 쓴 에필로그 42년 만의 '민주훈장'

애초 이 프로젝트의 시작은 KBS였다. 2015년 이병도 기자 등 KBS 기자들이 국가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벌여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서훈 기록 72만 건을 받아냈다. 훈장 데이터를 프리즘 삼아 한국 현대사를 조명하는 탐사 기획이었다.

그러나 1년이 지나도록 온전히 보도하지 못했다. KBS 보도본부 간부들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혔다. 우여곡절 끝에 뉴스타파 제작작진이 72만 건의 서훈 자료를 확보했고, 2016년 7월과 8월 KBS를 대신해 <훈장과 권력>을 방송했다.

당시만 해도 정부는 전체 서훈 명단을 비공개했다. 누가 언제 어떤 공적으로 무슨 훈장을 받았는지, 서훈의 전체 규모를 파악할 수 없었다. 훈장은 말 그대로 국가와 민족에 헌신한 이에게 바치는 최고의 영예인데, 서훈자 명단을 안팎으로 드러내지 못할 이유를 찾기 힘들었다.

뉴스타파가 72만 건의 서훈 자료를 분석해보니, 그동안 정부가 서훈 기록을 공개할 수 없었던 이유가 분명해졌다. 떳떳하지 못한 부끄러운 서훈 기록이 적잖게 확인됐다. 역대 집권자들은 훈장을 기득권 세력의 포섭과 결탁 등 통치의 수단으로 활용했다. 그 결과, 훈장의 역사는 친일로 얼룩지고 독재로 굴곡진 한국 현대사를 고스란히 비추고 있었다.

대한민국 훈장의 역사는 독립운동과 민주이념 등 헌법 정신을 오롯이 구현하지 못했다. 헌정과 인권을 파괴한 전두환 등 독재 세력과 노덕술 같은 친일파에게 훈장이 여럿 주어졌다. 반면 민주인사들에게는 인색했다. 6년 전 취재 당시 서훈 명단에서 전태일, 박종철, 이한열은 없었다.

2016년 7월과 8월 연속 보도한 뉴스타파 <훈장과 권력> 프로젝트 

대한민국 훈장의 종류는 12개다. 공로별로 건국훈장, 무공훈장, 수교훈장, 보국훈장, 산업훈장, 체육훈장, 문화훈장, 근정훈장, 과학기술훈장을 비롯해 대통령이 자신과 배우자에게 스스로 베푸는 '무궁화대훈장', 새마을 운동 유공자에게 주는 '새마을훈장'도 있다.

하지만 민주화 유공자를 받드는 '민주훈장'은 따로 없다. 정치·경제·사회·교육·학술 분야에서 국민의 복지와 국가 발전에 이바지한 사람을 기리는 '국민훈장'이 포괄적으로 있을 뿐이다.

그런 까닭에 <훈장과 권력>을 여는 1부의 제목으로 “민주훈장이 없는 나라”로 정한 것은 필연이었다. 언젠가 민주인사들이 훈장을 받는 그때가 되어야 비로소 <훈장과 권력> 프로젝트를 마무리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제작진의 마음이 하나로 모였다. 결국 <훈장과 권력> 에필로그는 따로 쓰지 않고 빈칸으로 남겼다.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며 민주인사들에 대한 서훈의 길이 열리기 시작했다. 2020년부터였다. 그해 6월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고 이소선,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 고 박정기,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 인권변호사 고 조영래 등 19명에게 훈·포장(대통령표창 5명 포함)이 수여됐다. 같은 해 11월 전태일 열사에게 국민훈장 무궁화장이 추서됐다.

2021년에는 고 계훈제, YH무역 김경숙 열사, 고 김근태, 명지대생 강경대 열사 등 31명이 훈장과 포장(대통령표창 2명 포함)을 받았다. 올해에는 성균관대생 김귀정 열사, 서울대생 김세진·이재호 열사, 윤상원 열사, 조선대생 이철규 열사, 대우조선 노동자 이석규 열사 등 17명에게 국민훈장 모란장과 국민포장이 추서됐고, 두 명이 대통령표창을 받았다.

독재 권력에 맞서 언론자유를 위해 애쓴 해직언론인 세 명도 훈장을 받았다. 2020년 고 성유보(동아일보 해직 기자), 2021년 고 정태기(조선일보 해직 기자), 2022년 고 안종필(동아일보 해직 기자) 등이다. 추서된 훈격은 국민훈장 모란장, 사유는 '민주주의 발전 유공'이다.

고 안종필 동아일보 해직기자 (1937.5.5 ~1980.2.26)

안종필(1937.5.5 ~1980.2.26)은 동아일보 기자로 재직하던 1974년 10·24 자유언론실천선언에 참여했다. 그 무렵 한국기자협회 동아일보 분회장을 맡았다. 1975년 강제 해직되면서 다시는 동아일보로 돌아가지 못했다. 1977년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동아투위) 2대 위원장을 지냈다.

1978년 보도되지 않는 '민주 인권 일지'사건으로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체포돼 옥고를 치렀다. 박정희가 죽은 후 1979년 12월 석방됐으나, 옥중에서 얻은 병이 깊어져 1980년 2월 43세로 별세했다. 동아투위는 그의 언론자유 정신을 기려 1987년 '안종필자유언론상'을 제정했다.

오늘날 자유언론을 압살하는 모든 법과 제도는 철폐되어야 한다고 하는 것은 구속되었을 당시나, 본인이 지금 법정에 서 있을 때나 마찬가지로 제 소신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 안종필 법정 최후진술 중 (1979년 7월 25일, 민권일지 1차 사건 항소심) 


고 안종필의 아내 이광자 씨는 지난 8월 뉴스타파 제작진을 만나 남편이 사후 42년 만의 이뤄진 서훈의 의미를 “착하고, 의롭고, 정의를 그렇게 추구하고, 진실된 사람이 (훈장을) 받을 거는 받았구나”라고 밝혔다. 또 “아마 (남편이) 살아계신다면 진짜 멋진 대기자가 됐을 거예요. 참 멋진 기자가 됐을 거예요”라는 말을 반복했다.

뉴스타파는 이광자 씨와의 인터뷰를 통해 6년 만에 <훈장과 권력> 에필로그를 쓸 수 있게 됐다. 앞으로 더 많은 이들이 국가로부터 '민주훈장'을 받을 것이다. 올해 상반기 민주훈장을 포함해 훈·포장을 받은 서훈자 13,513명을 뉴스타파 데이터 포털에 공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