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Ⅰ. 그날 서울의 밤을 기록하다
같은 편이라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는 사실만 확인한 ‘외톨이 계엄’이었다.
2024년 12월 3일 밤 10시 23분. 윤석열 대통령은 용산 대통령실에서 긴급 대국민 담화를 열었다. 윤 대통령은 국회의 정부 관료 탄핵 소추, 내년도 예산안 감액 등을 언급하며 국회를 “범죄자 집단의 소굴”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 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아무도 예상치 못한 전개. 45년 만의 계엄령 선포였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의 옆에 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여야 정치인, 지자체장, 학계와 법조계, 시민사회단체 등 각지에서 비상 계엄에 반대한다는 성명이 나왔다.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뛰쳐나와 계엄군 앞을 막았다. 그러는 사이 국회는 3시간 만에 비상 계엄을 해제했다. 대체 그는 뭘 믿고, 누굴 믿고 그리 대담했던 걸까. 시대착오적이고 무모한 계엄은 ‘3시간 천하’로 막을 내렸다.
뉴스타파는 그 무섭고 허무했던 내란의 밤을 기록했다.
2024년 12월 3일 화요일
22시 27분
비상계엄 선포
윤석열 대통령은 긴급 대국민 담화를 열고 야당을 비판하다 갑작스레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적과 교전이 벌어진 상황도 아닌데 비상계엄을 선포한 것은 위헌, 위법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TV
22시 30분( + 3분)
계엄군의 선관위 진입
소총으로 무장한 10여 명의 계엄군이 경기도 과천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청사로 진입했다. 국회에 이어서 주요 헌법기관인 중앙선거관리위원회까지 장악하려는 시도였다.
5일 국회 현안보고에 따르면 이날 중앙선관위에 투입된 계엄군은 297명까지 늘어났다. 계엄사령관은 5일 국회에 출석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청사 군병력 투입 사실도 “몰랐다”고 주장했다.
영상 : 시민 제공
22시 42분 ( + 15분)
민주당, 국회로 의원들 긴급 소집
대통령의 계엄 선포 직후, 민주당 의원들의 단체대화방은 들끓기 시작했다. “원내지도부가 지침을 빨리 내려달라”는 요청이 나왔다. 더불어민주당은 당 소속 의원들에게 국회로 긴급히 오라는 명령을 내렸다.
22시 43분( + 16분)
전군 주요 지휘관 회의
김용현 국방부 장관은 전군 주요 지휘관 회의를 열고, 전군에 비상경계 및 대비태세 강화 지시를 내렸다.
22시 49분( + 22분)
한동훈 대표 입장문
재빠른 ‘손절매’가 나왔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당 대표 명의의 입장문을 내고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한동훈 페이스북
22시 56분( + 29분)
이재명 대표 생중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국회로 이동하며 유튜브 생중계를 했다. 그는 “윤 대통령이 국민을 배반했다. 지금 이 순간부터 윤 대통령은 대한민국 대통령이 아니다”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또 “국민 여러분께서 이 나라를 지켜주셔야 한다. 지금 국회로 와달라”고 호소했다.
영상 출처 : 이재명 유튜브
22시 57분( + 30분)
국회 폐쇄
국회 출입문이 폐쇄됐다. 국회 경비단도 전원 배치됐다. 국회 정문을 막아선 경찰은 국회의원의 출입도 불허했다. 일부 의원과 당직자가 항의하며 몸싸움이 벌어진 뒤에야 경찰은 신분이 확인된 국회의원만 출입을 허용하겠다고 했다.
박찬대 원내대표가 폐쇄된 출입문 대신 국회 담벼락을 넘어 경내 진입에 성공했다. 의원들 사이에선 긴박하게 ‘월담 정보’가 공유되기 시작했다.
출처 : 시민 제공, 뉴스1
22시 59분( + 32분)
국민의힘 비상 의총 소집
국민의힘도 비상 의원총회를 소집했다. 공지된 소집 장소는 국회가 아닌 국민의힘 중앙당사였다. 국회가 재적의원 과반의 찬성으로 계엄 해제를 요구하면 대통령은 이를 해제할 수 있다. 그런데도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국회가 아닌 당사로 의원들을 불러 모았다.
23시 00분( + 33분)
우원식 국회의장 월담
같은 시각 우원식 국회의장은 국회의원들에게 공지했다. “모든 국회의원은 지금 즉시 국회 본회의장으로 모여달라.” 6분 뒤, 우원식 의장도 경찰의 경계가 느슨한 담을 넘어 국회로 들어가는 데 성공했다.
사진 출처 : 국회의장실
23시 10분 ( + 43분)
이재명 당 대표 월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국회로 이동하며 유튜브 생중계를 통해 “국민 여러분, 국회로 와달라”고 호소했다. 영상에는 이재명 대표가 담을 넘어 국회 경내 진입에 성공하는 모습도 담겼다.
영상 출처 : 이재명 유튜브
23시 20분( + 53분)
‘김용현 국방부 장관 건의로 계엄 선포’ 알려져
예고없이 펼쳐진 한밤중 비상계엄 선포는 김용현 국방부 장관의 건의로 이뤄졌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23시 25분 ( + 58분)
포고령 1호 발표
계엄사령부가 설치됐다. 계엄사령관에는 박안수 육군참모총장(대장)이 임명됐다. 임명에 이어 곧바로 계엄사령부 포고령 1호가 발표됐다. 국회와 지방의회, 정당의 활동을 금지하고, 모든 언론과 출판은 계엄사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는 도저히 2024년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내용이 포함됐다. 포고령 위반자는 계엄법에 의해 영장없이 체포, 구금, 압수수색을 할 수 있으며 처단할 수 있다는 협박성 문구도 포함됐다.
국방부를 비롯해 각급 부처들도 긴급 회의를 개최하며 ‘비상 대기’와 ‘긴급 소집령’이 연달아 내려졌다.
23시 40분( + 1시간 13분)
국회 상공 헬기 등장
계엄이 선포된 서울 여의도 국회 상공에는 헬기 여러 대가 굉음과 함께 등장했다. 무장한 군인이 헬기에서 내리는 영상이 실시간으로 퍼졌다. 계엄 선포 소식에 놀라 국회 앞으로 달려온 시민들은 시위를 시작했다.
영상 출처 : 시민 제공, 국회사무처
23시 55분( + 1시간 28분)
민주당, “전 당원 집결” 문자 발송
더불어민주당은 전 당원에게 국회와 여의도 중앙당사로 집결하라는 문자를 발송했다.
23시 58분( + 1시간 31분)
‘갑호비상’ 지시 혼선
서울경찰청 3기동단은 “비상계엄 선포와 관련해 갑호비상으로 전 직원 출근하도록 전파바란다”는 공지를 산하 기동대에 내렸다. 갑호비상은 치안 사태가 악화되는 등 비상 상황 시 발령하는 경찰 비상 업무 체계로 가장 높은 수준의 비상근무다.
*이는 서울경찰청 기동본부에서 “휴무 부대를 제외하고 전 직원 출근 지시를 부탁드린다”는 내용의 지시를 하달했지만 기동단에서 전달받지 않은 ‘갑호비상’을 현장 인력에 지시해 비상 업무 체계 혼선을 빚은 것으로 밝혀졌다.
2024년 12월 4일 수요일
00시 05분( + 1시간 38분)
계엄군, 국회 본회의장 강제 진입 시도
자정이 지나자 소총을 맨 군인들이 국회 경내에 진입하기 시작했다. 계엄군의 국회 진입을 막기 위해 국회의 온갖 집기가 동원됐고 보좌진과 국회 직원들은 카메라를 켜고 계엄군과 대치했다.
이후 국회 국방위원회 현안질의에 참석한 계엄사령관과 국방부 차관은 국회 병력 투입 지시는 김용현 국방부 장관이 했다고 주장했다. 계엄사령관은 당시 군 부대 국회 투입을 “누가 결정했는지 정확히 모른다. 제가 통제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사진 출처 : 시민 제공
00시 45분( + 2시간 18분)
계엄군, 국회 본청 진입
무장한 계엄군은 국회 본청 측면의 유리창을 깨고 건물에 진입했다. 같은 시각 국회 본회의장에는 100여 명의 의원들이 모여 정족수가 차기만을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보좌진 등은 본회의장으로 향하는 문을 막고 소화기를 뿌리며 격렬하게 저항했다.
사진 출처 : 국회사무처, 연합뉴스
00시 49분 ( + 2시간 22분)
본회의 개최
헌법 77조 5항에는 “국회가 재적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계엄의 해제를 요구한 때에는 대통령은 이를 해제하여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의원들은 계엄 해제를 요구하기 위해 하나 둘 본회의장으로 모여들었다. 국회 본회의장에 도착한 의원들이 정족수를 넘기는 150여 명으로 늘어나면서 마침내 국회 본회의가 열렸다.
사진 출처 : 뉴시스
00시 50분( + 2시간 23분)
이어지는 비상계엄 조치
의원들이 국회 본회의장에 모이는 시간에도 비상계엄 조치는 계속됐다. 서울경찰청은 출입기자단에 “을호비상을 발령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을호비상’은 경찰비상근무 중 2번째로 높은 조치로 가용 경찰 병력의 50%까지 동원할 수 있도록 하는 조치다. 이 조치는 점점 커지고 있던 국회 정문 시위에 대응하기 위한 조치로 받아들여졌다.
01시 01분( + 2시간 34분)
비상계엄 해제 결의안, 190명 전원 찬성 가결
재석 의원 190명 전원의 찬성으로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가결됐다. 172명의 야당 의원 외에도 18명의 국민의힘 의원들이 표결에 참여했다. 이로써 윤석열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2시간 40분 만에 무효가 됐다.
사진 출처 : 강훈식 더불어민주당 의원 페이스북
01시 15분( + 2시간 48분)
계엄군 국회에서 철수
결의안이 통과됨에 따라 계엄조치도 소강사태에 들어갔다. 가장 먼저 국회에 투입된 계엄군이 철수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투입된 계엄군도 돌아갔다. 서울경찰청은 ‘을호비상’을 무기한 보류했다.
사진 출처 : 뉴스1
01시 41분( + 3시간 14분)
계엄사령부 유지
한편, 국방부 관계자는 대통령이 계엄을 해제할 때까지 계엄사령부를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계엄법에 따르면 대통령이 계엄을 해제하기 전에 국무회의 심의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이 절차가 완전히 끝날 때까지 비상계엄을 유지하겠다는 뜻이다.
01시 59분( + 3시간 32분)
계엄 해제 요구 통지
우원식 국회의장은 “윤석열 대통령과 국방부에 계엄 해제 요구 통지를 보냈다”고 밝혔다. 공은 다시 윤석열 대통령에게 넘어갔다. 한때 윤석열 대통령이 국회 결의안에 대해 ‘거부권 행사’를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며 국회에 긴장이 흐르기도 했다.
04시 27분( + 6시간)
윤석열, 비상계엄 해제 선언
윤석열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를 통해 국회의 요구를 수용해 비상계엄을 해제하겠다고 말했다.
04시 30분( + 6시간 3분)
비상계엄 해제
윤석열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를 통해 국회의 요구를 수용해 비상계엄을 해제하겠다고 말했다. 계엄을 선포한 지 6시간,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안이 가결된 지 3시간 30분 만이었다. 윤 대통령은 “새벽인 관계로 아직 의결 정족수가 충족되지 못해서 (국무위원이) 오는 대로 바로 계엄을 해제하겠습니다.”라며 담화문을 낭독했다.
사과는 없었다. 새벽을 뜬눈으로 지새운 국민들에게 당혹 그 자체였다.
‘내란의 밤’이 지나간 12월 4일 오전, 대통령실은 기자들에게 ‘비서실장과 수석들이 일괄 사의를 표명했다’고 전했다. 정부서울청사에서는 한덕수 국무총리를 포함한 국무위원 전원이 사의를 표명했다. 집권 3년차에 국무위원 전원이 사임하는 초유의 사태가 현실로 다가왔다. 이렇게 윤석열 대통령은 국가의 본질적 기능을 스스로의 손으로 마비시켰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에 대해 국내외 여러 기관들은 ‘정당성 없는 친위쿠데타’라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6개 야당 소속 국회의원 등 191명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공동으로 발의했다. 무소속을 포함한 야당 성향 국회의원 수는 192명이다. 국민의힘에서 8명 이상의 이탈표가 나올 경우 탄핵 소추안 의결 정족수인 200명을 넘기게 된다. 설령 탄핵소추안이 부결되더라도, 민주주의 헌정질서를 스스로 위협한 윤석열 대통령이 남은 2년 반의 임기 동안 식물대통령 신세를 면할 방법은 없어 보인다. 이렇게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또 한번 커다란 시험대에 놓이게 됐다.